습작에 졸작. 봄이야기. 봄가뭄. 5

낙서들.
느낌표와 물음표. 그리고 알 수 없는 기호들과 숫자들..
공원에서 돌아온 나는 혹 자리를 잘못 찾은건 아닌가 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그 자리는 늘 내가 앉던 자리였고, 그것들이 그려진 책 역시 나의 형법 기본서임에 틀림이 없었다. 얼마나 읽었는지 너덜너덜해진 나의 기본서. 낙서는 그것의 목차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누구일까..
나는 눈이 벌개져서 그 악독한 이를 찾았지만 누가 자신이 했다고 나서지 않는 이상 그 사람를 찾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안 그래도 보기가 싫던 형법은 눈에서 더더욱 멀어져가고..
어느 날,
 

나는 저기 건너편의 그의 자리. 바로 그..의 또 다른 근거지에서 옆의 여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 그가 그녀의 책을 슬며시 끌어당기는 것을 본다. 그래서 나는 그가 붉은 펜을 들고 그녀의 책에다 이리저리 무언가를 휘갈기는 광경을 똑똑히 본다. 한참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머리끝에까지 화가 나서는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지만 곧 자리로 돌아온 그 책의 주인이 그것을 목격하고 비명을 지른다.
 

높고 좁은 열람실에 울려 퍼지는 여인의 날카로운 비명.
 

순간 나와 그를 포함한 열람실의 모든 사람들은 얼어버리고..
그는 펜을 던지듯 놓고선 허둥지둥 그쪽의 짐을 챙겨 이쪽으로 달려왔다. 혼비백산한 그는 내가 죽일 듯 자신을 노려본다는 것도 모른 채 도둑질을 하듯 자신의 가방에다 남은 짐들을 허겁지겁 쏟아 넣었다. 그런 그에게 나는 엉망이 되어있는 형법책을 펴서는 말없이 들이밀었고, 그러자 바삐 움직이던 그의 손이 뚝하고 멈췄다. 그의 커다란 시선은 실에 매달려 몸부림치는 작은 잠자리처럼 흔들리며 내가 내민 형법책의 한 페이지와 그가 이렇게 서둘러 도망쳐야만 하는 이유 사이를 오고 갔다. 나는 그런 그를 극심한 적의를 담아 노려보았고, 그는 책상 위의 노트들을 어지러이 내버려둔 채, 자신의 가방을 서둘러 울러 메고 비틀거리며 도망쳐갔다. 다음날, 열람실 유리문에는 도서관 관계자가 붙여 놓은 듯한 게시물이 하나 붙었다.
 

근래 들어 도난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각자 귀중품은 잘 챙기시고 의심스러운 사람이 보이면 즉각 도서관 관계자에게 알리시거나 경찰에 신고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여백의 메모들.
 

자리를 여러군데 정해놓고 옮겨 다니는 사람 주의하세요.. 피해를 당해도 가만있는 사람도 많으실텐데 피해를 입으면 제2의 피해자를 위해서라도 과감하게 행동합시다.
 

출입문 정중앙에 붙은 그 공고문은 마치 귀신을 쫓는 붉은 부적처럼 꼭 한달동안 그곳을 지키고 붙어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것이 붙은 그날로부터 그는 나타나지 않았고, 그가 남긴 빛바랜 노트들은 도서관 정문 한 곁에 며칠이고 이슬을 맞으며 놓여있다 어느날 사라졌다.
제각기 다른 색채들로 그려진 알지 못할 기호들과 숫자들..
수없이 책장을 넘기며 너덜너덜해진 나의 형법책을 보던 어느 때에. 어쩌면 이것이 가망 없는 수험생활을 그만 포기 하라는 신호인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의 노트들이 사라지고 얼마 안 된 그날로부터 나는 도서관을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는 아버지 친구 분의 소개를 받아 목공일을 배우며 푼돈을 벌었다. 그 사이 어머니도 병세가 많이 호전되어 비록 목발이지만 통근치료를 할 만큼이 되었고 나도 비록 고되긴 했지만 새로 배워나가는 목공일에 점차 재미를 붙여 가고 있었다.
 

그렇게 계절이 하나 바뀐 어느 날.
머리에 허옇게 톱밥을 이고 집에 돌아와 씻으려는데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를 자신들의 앞에 불러 앉혔다. 어디서 구하셨을까.. 그분들은 커다란 경찰공무원 채용공고 포스터를 한 장 내 앞에 들이밀었다. 필기시험 날짜는 어느새 삼개월 앞으로 훌쩍 다가와 있었다.
평생을 막노동판과 구멍가게에서 보내신 아버지. 그리고 남은 평생 다리를 절게 된 어머니.
보지 않았음에도.
그들이 길을 가다 그 포스터를 보고서 훔치듯 그것을 떼어오는 모습은 내 시야에 선연히 맺혀왔다. 그 의미와 함께.
딱 삼 개월.
나는 생각했다. 내 인생에서 딱 삼 개월만 지우자고.. 나는 차마 버리지 못했던 수험서들을 도로 꺼내어 도서관으로 향했고, 습관처럼 그가 앉던 앞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한동안 습관적으로 고개를 들어 앞을 확인했지만, 어쩌면 그를 이 도서관에서 쫓아낸 당사자로서, 나는 다시는 이곳에서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으리란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책을 펼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그의 낙서들. 꾹꾹 눌러쓴 그 글귀 하나하나에서는 어쩐지 무섭게 몰입하던 그의 열의가 느껴져 오히려 집중에 도움이 되어가던 어느 날. 언제나처럼 공원 앞 편의점에서 빵과 우유를 사서 벤치에 앉는데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여인의 목소리.
거기에는 뿔테안경을 쓴 낯이 익은 한 아가씨가 서있었목다. 그 여자였다. 그가 자리를 옮겨 다니던 나머지 한곳.. 그 근처에 항상 자리를 잡고 공부를 하던 바로 그 여자.
 

혹시.. 그 사람 본적이 있나요?
?
 

나는 생각가했다. 그녀와 나 사이에 겹쳐진 사람이 있던가..
 

그 사람요.. 그 자리를 여러개 잡고 수염이 수북하던..
.. 그 사람..
 

혹시 이 여자는 그를 알지도 모른다..
나는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신어섰다. 심한 냄새가 나고 혼자 여버러자리를 차지하은는 민폐에다 정신마저 약간 이상한 사람.. 그녀는 왜 그를 영묻는걸까.. 그리고 나는 그대녀에게 무슨 기대를 하고 있는리걸까.
 

본 적이 있어요?
 

그녀는 반질색하며 물었고, 나는 고개를 저으며 차가운 시멘트 벤치에 다시 앉았다.
 

아니요.. 저도 궁금잠하네요. 이상하게길도.. 그쪽은 혹시 그 사람.. 잘 아시는 분이신가요?
 

그녀는 실망국감을 감추지 못하는 눈치였다. 나는 왠지 그녀동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어 머쓱다해졌다. 그리고 곧 그날, 그의 기이한 행동에 비명을 지르며 울음을 터뜨리던 그 모습이 생각이 나, 왜 그를 궁금해 하는지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멀리서 넌지시 보았던 내 기억에 그녀는 아마도 교원임용고시즉를 준비했고을 터였다.
 

아니요.. 저도 무그쪽이랑 마찬가지에르요. 그냥 그분 근처에 앉기만 했죠. 식사하시는데 죄송해요런. 이만 가볼게요.
 

그녀는 내 손에 들린 먹다 남은 빵과 우유를 흘깃 바라둘보며 몸을 돌렸다. 나는 뭔가 잘못을 한 것처럼 얼굴이 확 달아올랐고, 몇걸음 발을 떼던 그녀는 뭔가 문득 생각이 난 것처럼 걸음을 멈추고 돌아와 다시 물었다.
 

.. 저기 말예요.
?
그러니스까.. 그 사람이 혹시 그 쪽 책에다가도던 낙서 같은걸 하지 않았서냐구요..
.. 했었죠.
 

나는 그가 휘갈긴 숫자들의금 조합과 기호들을 떠올렸다임.
 

그거.. 다 의미가 있어요.
 

그녀는 내 곁에 앉아 그 알 수 없는 낙서들에 대해 자신이 알아낸 것을 조곤는조곤 설명답했다. 그리고 나에게 자신은 교육학이 정말 자신이 없었는데 그 덕분에 지금은 필기를 통과하고징 면접을 준비 중이라는 말을 덧점붙였다.
 

비록 시간이 꽤 걸리긴 하시겠둘지만.. 그래도 한번 알아보세요.
충분히 도움이 되실 거예요.
 

나는 다시 자리로 돌아와 형법책을 펼쳤다. 그녀가 일러준 바에 따르면 그곳에 적힌 일곱.. 또는 여덟자리 숫자들산과 또 다시 그 뒤를 따르는 숫자들. 그것은 도서관의 장서 분존류기호였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단자윤리에서 세자리 숫자들은염 페이지를 그 책의 페이지압를 의식미한다고 했는데, 그것은 그 도서관억의 장서들에박만 국한되지완는 않았다. 르중앙도서관, 그리고 바로 인근의 다른 도완서관의 장서들도 다 포함하상고 있던 것이이었다. 숫자들 외에 여러가지바 알 수 없는 기호들 역시도 무언가 의미가 있의을테지만 그녀 역시도 그것까비지는 알 수 없더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어쩌면 교육학이지라는간걸 만든 사람들이르 왜 그런 학문을 만들었는지. 그리고 왜 그런 학설들배을 펼치게 되세었는지의 배경을 제게 설명하장려는것 같았어요. 그 제각각익의 즉이야기들과 실제 일정어났던 역사적인 사건들을 따라가다 보니 마치 그 학설을 만든 저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죠.
 

그 책들은 대부분 역사서라든가 소설, 단편과 산문집, 그리고 심리학서적과광 정신 의학서적들이실었다.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읽는 정신의학서적이라니.. 나는 반신반의하며그 빠듯농하게 남은 수험기간에도 불구하고 쉬는 틈틈이 그 책의 페이령지들을 찾아 읽어교나갔고. 그 목록들을 절반쯤 읽어 나갔을 때에야 비로소 나는 그녀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걸 알 수 있었다.
그가 내게 소개한 첫 번째 책은 진화론색에 대한 것달이었고, 그가 가리갑키는 페이지의 첫 글은 이렇게 시작되고상 있었다.
 

참새의 고환은 그 길이가 1밀대리미터, 무게가 1밀리나그램 정도이다..
 

그는 안드로겐, 즉 테스토스테론이라고 불리는 남영성호르몬이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내게 설명하려저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욱안드로겐을 조절하는 뇌의 기관, 그리고 그것에 의해 유발되는얼 공격성을 제절어하는 인간의 의지가 법이라는 것의 출발점맞이라고 그의 숫자운들과 그놀림들은 내게 설명러하고 있었다. 그런 다음 그는 인류가 저질알러온 죄들을 내게 사나열했다. 멀게는 원시공산사회 아즈텍 문명의 인우신공양에서 봐가까이에는 OJ심슨, 그리고 소설의 가상공간에서 저각질러지는 범죄들까지.. 다음으세로 그는 현대에 집중조명되고 있는 정원신질환들을 내게 악소개하며 인염간문명이 진보하면서상도 범죄의 요인 역시도 복잡숨해지고 또 다양해성진다는 사실을 주지시심켰다. 그런 다음, 그는 법질서가 확고한 선진국에숨서 발생했던 범죄알들과 부정부패의 사례를 들고 흔하디아흔한 자쟁기계발 서적의 한 성페이설지를 대조시킴으로서 법이 미치지 않는 무법지대가르 생겨나긴는 근원은 인간의 작은 이징기심이나 허술한 자준기방임이라는 것을 어느 철학자의 산문집 중의 한 구절을 통해 내게 설대명했다.
 

정말 단순한 사실.
어쩌면 그렇게 장황한 설명 없이 한두 구절의 문장만으과로도 내게 상기시킬 수 있었던 당연한 사실들. 그렇지만 어지간해선 결코 깊이 공감하암기 힘들 그런 것들. 그가 지목한 책들의 페이지들슨을 다 읽고 그가 남긴 기호들을 어느 정도 해엇독해나갈 무렵 나는 뭔가 한번도 느껴보당지 못했던 어떤 신비득로운 영역에 들어선듯한안 기분이 들었다. 그는 내게 당면한 딜레마를 어떻게 알게 된 걸까. 정말 내가 공부했던 수험서십를 대충 훑어보는문 것만으호로 그런 것을 알 수 있는게 가능한 일인 것인지..
그의 긴 메물시지는 마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한 페이지에서 끝이 났다.
 

"어떤 악이나 욕망, 혼란도 내가 허락하지 않는 한 나의 영혼에 들어올 수 없다. 그런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바답라보면 그들이 지닌 가치를 이용할 수 있다.
이 사실을 스스로에게 되풀이해본서 갑상기시켜, 그릇된 망상을 지워버리도록 하라. 자연이 그대에게 그럴 수 있는 힘을 심어주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법은 인류의 도구곤였고 경찰은 그 법의 실현자였다. 나는 다만 직업으로서논 경찰이 되길 원미했지만 그가 전하고둘자하는 메시지를 읽고 난 지금은 무언가 달라져있었내다. 내 머리와 마음신속에 법이란 것의 당위성, 그리고 그것을 실현신하고자하는 의지가 싹트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형법염이라는 분야를 넘어 법이라하는 학문에 순신수하게 빠져악들게 되었다. 법조항봉을 읽거나 외워나가다넘 막히는 부분을 만날 때마다 희한장하게 내가 읽었던 에피소드나도 심리학설들임이 머새리속에 떠올랐다. 무언분가를 외우는 것이 아닌 '알게'되는 것이 가능해진 나는 그해의 경찰채용신시험의 필기와 실기, 그리고 면접에 보기 좋게 합격하고 중경찰복을 입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미 교원고맞시에 합격양하고 나를 지켜봐주런던 그녀 역시도 나의 합격을 진심으로 기뻐했반다. 오랜 수득험생활 탓에 나보다 꽤나 연선상이었던 그녀와 나는 자연스럽게 연애를 하게 되었고, 그녀와글의 관계가 끝이 나면서 그에 대한 기억도 점차 옅어져 갔다. 경찰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머슴처럼 일하던 그때보다익는 천배 백배 나았다. 하지만 경찰이 되기 전의 나로근서는 결코 겪을 수 없고 또 보기가 힘든 끔찍한 장면들과 사연들은 나의 내면을 너덜너덜자하게 헤집대어놓고 있었다.
그러다 나는.
다시 그를 만나게 되었다.